밀키웨이
진로 재선택 과정 01 ) 24살,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다. 본문
4년 동안 유아교육학과를 다니며 '이 길이 내 길이구나.'싶었다.
이유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내가 이 과에 입학하게 되면서 장학금을 학기마다 챙겨받고, 주변 동기들과 교수님들도 나에게 "너 정말 잘 한다. 잘 맞는다." 라고 이야기 해주었으니까.
24살,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네에 있는 큰 유치원으로 입사했다. 초봉은 220이었다.(세후. 잘 주는 곳이었다.)
큰 유치원 기관이고, 여러모로 장점이 있어 보여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달랐다. 입사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매일 '차에 치여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선배 교사의 미친듯한 갈굼, 학부모들의 밤낮없는 전화(심지어 주말 밤에도!), 과다한 업무량...
유치원의 출근 시간은 7시 50분이었는데, 퇴근 시간은 말로는 6시라고 하나 암묵적으로 8-9시를 왔다갔다 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점심시간이 없다는 것과,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점... 혹시라도 내가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뜨러 간 사이에 우리 반 아이가 다치게 되면 CCTV확인 > 교사가 자리를 비움 > 온전히 교사의 책임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 두 가지가 나를 정말 힘들고 미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한창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을 때, 학부모가 말했다.
"내 아이의 선생님이...선생님들 처음 해보신 분이라 조금 두려워요. 그래서 안 다니려고요."
나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저 말을 듣고서 처음에는 수긍했다.
내 아이의 일 년 이니까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시간들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는 게 당연하겠지.
몇 시간 후에는 눈물이 났다. 나는 애썼다고 생각했는데...심지어 학부모님과 사이가 좋았고, 아이와도 사이가 매우 좋았다. 배신당한 기분으로 눈물을 흘려대고 나니 마지막에는 내 자신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운 게 하나도 없나?
이러한 생각은 점점 나를 좀먹어갔고, 학기 말에는 병원을 다니며 일을 병행했다. 주말에는 상담, 평일에는 직장.
돈을 모아도 돈을 쓸 시간이 없었다. 집에 오면 또 일지를 써야 했다. 수업 계획안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게 사는게 맞는건가. 매일 잠을 적게는 2시간에서 3시간, 많게는 5시간을 자고 출근을 하였다.
오전에 일찍 가서 선배 교사들 반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간식을 챙겨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 이건 사회 초년생이니까, 꼰대문화 심한 우리 나라에서는 그냥 그렇구나. 막내 문화구나. 하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해나갔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건, 저녁마다 전화를 걸어오는 학부모들이었다.무서웠다. 항의하듯 일주일의 일과를 물어보고, 부족하다 느낀 점을 하나하나 이야기 하는 학부모들. 그들은 내 사생활은 관심이 없었다.
내가 분명 퇴근 전에 전화를 걸어서 부재중이 남았을 때에는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바빠서.' 라는 말을 했으면서, 내가 바쁘고, 내가 쉬어야 하는 시간에는 생각 없이 전화를 마구잡이로 해 대는 부모들이 너무 끔찍하게 싫었다.
일을 관둔 후에도...여전히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리면 몸이 차게 식는 기분이 든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감히 포기했다. 직업이라는게 1년 하면 모른다지만, 나는 그 직업을 처음 시작한 순간부터, 마무리 한 순간까지 어느 한 순간도 기쁘고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싶었건만 저 초봉에서 3년째 월급이 동결인 선생님들도 계셨다.(교육청 수당만 오르고.)
유치원은 대부분 사기업이다. 사기업도 그냥 사기업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이 운영하고 가족끼리 운영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하나의 사업체다. 그래서 교사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곳도 매우 많으며, 월급 및 호봉 상승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지 속은 텅텅 비어있다. (19년 기준 호봉표가 아닌 17년, 16년 기준 호봉표를 제시하는 곳이 10곳 중 8곳이다.)
유치원은 아직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전국에 유아교육과가 많기 때문에 교사의 공급이 원활하게 잘 이루어지고, 기관들도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을 정말 말 그대로 막 사용한다. 정말 막 굴린다.
그리고 학부모들의 인식 또한 굉장히 문제가 많다. 아무래도 유치원 특성 상, 의무교육기관이 아니기도 하고 요즘 유아교육기관에서 하도 흉흉한 일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부모들이 정말 극도로 예민한 경우가 많다.
나는 6세 총 24명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우리 반에 유독 예민한 부모가 많았던 탓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반 편성은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없으며, 어떤 부모를 만날 지 알 수 없으므로 내년에도 이런 부모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 것 같다.
또한, 원장들은 생각보다 치밀하고 치사하다.
이런 말을 써도 될 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지역의 경우 원장들끼리 친목회나 회의를 자주 가지는데, 그들 사이에는 '교사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한다. 실제로 내 친구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 교사가 유치원을 퇴사할 때 원장과 좋지 않게 마무리를 하자 그 교사를 그 지역에서 3년간 재취업 할 수 없도록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겠다고 협박한 사레도 있었으며, 머리를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진짜 원장들이 치사한게 뭐나면, 저래놓고 자기가 필요할 때(교사가 부족할 때, 혹은 평가를 앞두고 서류를 급히 마무리 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할 때)에는 다시 교사들에게 연락을 해서 교사들을 찾는다는 점이다.
직업 특성 때문인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많은데, 저런 이야기에 불쌍함을 느끼고 도와주러 가는 교사들도 많이 봤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제일 좋은 건, 교사 대 아동 비율 수를 낮추고 교사의 처우를 개선해 주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이 힘들어 보인다. 미래의 아이들, 미래의 자녀들이 마음 놓고 '유치원 교사'를 꿈 꿀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